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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곧 나인 사회, 직업 정체성과 ‘워라밸’ 그 너머의 이야기

by 융또영1 2025. 5. 18.

 

오늘은 현대 사회에서 ‘직업’이 개인의 정체성과 삶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민과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단순히 워라밸을 넘어서, ‘일’의 의미와 우리 삶의 균형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직업 정체성과 ‘워라밸’
직업 정체성과 ‘워라밸’

 

우리는 왜 직업을 곧 '자신'이라 여기는가?


"무슨 일 하세요?"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름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 말은 단순한 호기심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을 파악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 교육 수준, 소득, 심지어는 가치관까지 추측하곤 합니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에서 ‘직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기능합니다.

이런 현상은 산업화 이후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특히 지식노동이 중심이 된 현대 사회에서는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존감이 높아지거나, 프리랜서라는 정체성을 통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보이길 기대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직업-정체성 일치’ 구조는 때로는 긍정적인 자부심을 낳지만, 동시에 위험한 취약성도 내포합니다. 만약 일을 그만두거나 실패했을 때, 자신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 공허함, 이직 후 자존감 하락, 프리랜서의 정체성 혼란 등이 모두 이런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일’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처럼 여겨지는 구조는 사람을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소속된 직업의 기능적 역할로 환원시킵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점차 ‘나’보다는 ‘내가 하는 일’로 존재하게 됩니다.

 

워라밸은 진짜 해답이었을까?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급속도로 확산된 키워드입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야근 없는 회사, 칼퇴 보장, 휴식과 개인 시간이 확보되는 직장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졌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이제 ‘복지’가 아니라 ‘권리’로 여겨지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도 이를 브랜드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워라밸을 실현한 후에도 의외의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가 시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 ‘일을 하지 않는 나’에 대해 무가치하게 느끼는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일을 벗어난 나'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워라밸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닙니다. 문제는 일과 삶의 시간 배분이 아니라, 일 자체가 내 삶의 가치 전부를 대체한 구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삶에서 떼어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 외의 영역에서도 의미를 찾고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어야 진정한 균형이 가능합니다.

또한, 워라밸이라는 개념이 ‘높은 연봉+자율적인 시간’을 가진 일부 직군에만 해당하는 특권적 개념으로 작동하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플랫폼 노동자, 감정노동자, 저소득 근로자에게 ‘워라밸’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향일 수 있습니다.

 

'나답게 일하기'를 위한 새로운 해석


직업이 정체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진 지금, 우리는 단순히 일에서 도망치거나 균형만을 추구하는 접근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는 ‘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 출발점은 ‘나답게 일하기’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가치, 성향, 삶의 방향과 일의 내용이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성취욕이 강해 프로젝트 중심의 일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어떤 이는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은 루틴 업무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또 누군가는 혼자 일할 때 몰입하고, 어떤 사람은 타인과 협업할 때 비로소 창의력이 발휘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에너지 흐름, 가치 판단의 기준,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수반된 일 선택이 필요합니다.

또한 ‘일을 통해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라는 질문도 중요합니다.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내 삶과 사회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는 방향성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을 통한 자기 실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일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의 책임’을 혼자 짊어지고 탈진합니다. 정체성까지 일에 걸려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협력, 위임, 분담을 통해 우리는 건강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나’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은 ‘직업’이 아니라 ‘삶’에서 자란다


이제는 단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일하고 있느냐’,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느냐’를 묻는 시대입니다.
직업은 나를 설명하는 수단일 수 있지만,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좋은 직장’을 넘어 ‘나다운 일’을 찾고, ‘워라밸’을 넘어서 ‘일과 삶의 진정한 연결’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에 대한 새로운 대답에서 시작됩니다.